토아라는 이름을 지을 때 ‘아’라고 발음되는 부분은 분명 阿나 彩가 아니라 愛를 생각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토아는 분명 솟아난 언덕이거나 알록달록하기만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이었으므로, 분명 이름을 지을 때 사랑, 이라고 사랑, 할 아이라고 지었으리라고. 북극성斗은 먼悠 곳에서 그 사랑을 쳐다보면서도 동시에 사랑했고 정말 사랑해 마지않았고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그 이름이 에게 갔을 때 토아의 ‘아’는 空나 亞가 되었을 것이라고, 비었거나 버금가는 것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름 짓는 행위는 염원을 담고, 이름 자체가 주술이 된다고 한다. 이름은 고유하고 개별하다. 그러니 토아가 토아가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감히, 토아가 토아를 모사했다. 사랑받는 아이를 빈 것이 대체하고 마치 자신인 것처럼 굴었다. 그저 베낀 것이라면 차라리 낫겠다. 그건 원본이 남아 있는 행위니까. 복사본이 생기는 것뿐이니까. 그러나 분명히, 지금, 원본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러면 사라진 원본의 자리를 꿰찬 저 작태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약탈? 탈취? 찬탈!

내 앞에 바로 그 찬탈자가 있다.

주먹을 말아쥐고 머리를 후려친다. 중심을 잃은 틈을 타 발로 배를 찬다. 그대로 넘어뜨린다. 바닥에 누운 몸 위로 올라탄다. 횟수를 센다. 손을 움직이면서. 한 대, 두 대, 세 대……. 그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실핏줄이 터진다. 입술이 찢어진 건지 피가 난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 역시 나를 멈추지 않는다.

폭력을 반복하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익숙해진다. 어딜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 어딜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는 솜씨 좋게 맞고 나는 솜씨 좋게 때린다. 내내 그는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앓으며 허덕이는 건 맞는 사람뿐 아니라 때리는 사람에게도 들리는 탓이다. 그 심리가 역겹다. 오히려 내가 악을 쓰듯 움직이고 그는 부은 얼굴로 웃는데

웃는데

내가 손을 멈춘다.



나는 웃고 그는 손을 멈춘다. 허공에 들린 손은 내려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아 내려준다. 순순히 내려온다. 그는 조금은 온순해진 태도로 (포기했거나 혹은 메스꺼운 나머지 아무런 반응도 하고 싶지 않아졌거나) 내 손길을 따른다.

우리는 잠깐 그러고 있었다. 나는 쓰러져 누워 있고 그는 그 위에 앉아 주먹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누구든, 그러니까 우리 중 누구든 가엾기 짝이 없는 상황일 테지만 누구도 우리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나조차도. 가엾어지려면 안되어야 하는데, 정말 안되고 불쌍해야 하는데, 그건 동정이지 애정이 아니니까.

동정도 애정의 한 형태라고 말하는 건 아주 어리석다. 그건 결국 남의 ‘연약한’ 부분을 본 뒤에 찾아오는데, 즉 남의 겉을 까고 속을 들춰야 찾아오는 베풂의 감정인데 애정은 도리어 남의 겉만 보아야 하고 남의 속을 보지 않아야 가능하므로. 우리는 서로를 모를 때만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몰라도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몰라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모르고 영영 모를 것이다. 그로써 그를 사랑한다. 자신을 모르는 자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예를 들어, ‘자신’이라는 것이 없다든지.

언젠가는 하루하라 유우토라는 사람이 있었다. 단일하게. 분화되지 않고 개별적인 인간으로. 마치 그런 적이 없던 것처럼 되었으나, 적어도 나와 그는 아는 사실일 테다. 그리고 그가 안다. 나와 그만이 그걸 안다는 것조차도.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것,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일은 쉽질 않아서 (아니, 다른 사람에겐 쉬울지 몰라도 왜 우리에겐 이렇게 힘든지) 그는…… 지금 손을 멈춘 것이다.

나는 양팔을 벌리고 말한다. 안아 줄까. 그러면 그는 금방이라도 나를 다시 두들겨 패기 시작할 것 같은 태도로 아무 감정도 읽기 어려운 낯빛으로 툭 몸을 던진다. 내게 안긴다. 나는 품에 들어온 그의 머리카락, 누구도 묶어주지 않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괜찮아. 그는 무엇이 괜찮냐고 묻거나 괜찮지 않다고 부정하는 대신 가만히 안겨 있다. 가끔은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은 나날이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고 내게 얼굴을 향한다. 나는 할 말이 있냐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눈을 깜빡거릴 뿐이다. 장난처럼, 이마에 입을 맞추면 그는 눈썹을 찌푸린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나를 밀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나를 봐서…… 내가 그에게 입을 맞출 때까지도 그는 그렇게 있었다.



짧게 입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나는 다시 그에게 고개를 기댄다. 그 위에 누워 작게 숨만 내쉰다. 그는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자세가 불편할 법 한데도 한마디 말이 없다.

너,

내 목소리가 울린다. 그와 내 피부가 맞닿은 사이로. 그는 응, 하고 대답한다. 그 소리조차 울린다.

죽어 버려…….

나는 눈을 감는다. 그의 웃음이 떨림으로 전해진다.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면서, 그는 웃는다. 나는 내 얼굴에 닿은 몸으로 그걸 느낀다.

죽어 버려, 토아.

그가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그 품에서 나오지 못한다. 서로 접한 살갗은 따뜻하고 그 너머로 심장 박동이 쿵, 쿵, 하고 말소리가, 이어지고 나는 그래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 이게 다 진동 때문이다. 진동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한참 답이 없던 그는, 순수한 의문을 담아 답한다.

왜 나를 붙든 거야?

그렇게 기를 쓰면서. 마지막 말을 그가 정말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귀로 들었는지도. 그러나 연결된, 진동, 안에선, 그런 말이 들린다. 그건 내 목소리다. 그와 나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고, 그야 같은 것이므로, 그런데도 그게 내 목소리라고 나는 왠지 확신한다. 공기에선 한낮의 냄새가 난다. 달큼하고 아늑한. 이런 곳에선 먼지가 떠다니더라도 햇빛에 빛날 것이다. 무엇이든 햇빛을 받아 그 모습의 테두리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닿아 있어도 그와 나는 분명히 가려지고1, 가려지고2. 나는 입을 연다. 할 법한 말을 생각한다. 대부분이 저주의 말이다. 극히 일부는 다른 것인데, 내가 절대 입에 담아선 안 될 문장이다. 내가 말할 수 없는.

……꺼져.

그래서 말은 뭉그러지고 짧은 단어만 툭 던져진다. 그는 무엇을 이해한 건지, 그 말에서 대체 무엇을 들은 건지, 나처럼 진동을 통해 다른 걸, 예컨대 그 자신의 말을 덧붙여 들은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로 변함없이 웃는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결국 나를 버리지 못했잖아.

그 말과 함께 대화는 끝난다. 내가 답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 이유를 물으면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고,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데, 그건 말할 수 없는 것과는 다르다.

그가 나를 보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로도 시선은 느껴진다. 결국 내게 향하는 시선은 손으로, 아니 오직 검지 하나만으로 꼽을 수 있었다. 그러니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을 때 나는 그게 그임을 곧장 알아차린다.

누구도 달을 보지 않을 때 하늘에는 정말 달이 있는지, 그래도 달이 있노라고 주장한 학자의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아마 달조차 그 질문엔 답하지 못할 테다. 햇빛을…… 받아서. 햇빛이 표면을 빛내서. 그래서 있다고 별 의미도 없는 대답을 뱉을 순 있더라도. 한낮에도 달은 있고.

한낮의 달, 푸른 하늘의 흰 구멍, 낮에도 달이 뜬다고 외친다. 낮에도 그 자리에 있다고.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고 심지어는 달조차 그래서 나는 어디든 좋았다.

해를…….

해를 치워 버리면 누구도 달을 보지 못하겠지. 빛을 받지 않으니까. 빛을 반사해야만 사람의 눈에 보이니까. 시선이란 그런 거라서. 그런데 해가 있어서 달이 보이지 않아.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그저 달처럼 그렇게 떠 있을 수밖엔 없지 않나, 위치를 바꾸지 않고 천체가 될 수밖엔 없지 않나. 설령 해가 위장된 것이더라도 누군가 만들어낸 인공-태양이더라도 다들 그걸 보고 있으니까 나조차 그 빛을 받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빈 것이라고, 구멍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구멍으로부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라고. 그걸 보고 너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고.

그가 숨 쉬는 게 느껴진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치열하게도 한낮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낮을 증오했으나 밤은 두려워했다. 이대로 언젠가 해가 진다면 꼭 죽어 버릴 것 같아서, 나는 낮을 억지로 붙잡아둔다. 야행성 생물로 태어난 주제에 주행晝行한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