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을, 하나 상상하자. 두꺼운 구름으로 뒤덮인 행성이다. 누구도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곳엔 무언가 있다.

시나몬 스틱 끝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잔 안을 채운다. 연기는 무겁고 느리게 움직인다. 피터는 연기를 구경한다. 그 안에 무엇이라도 있을 것처럼. ‘만약 무언가 있다면’, 그걸 누가 발견할 수 있을까. 피터는 연기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나.


“당신은 바깥으로 돌아갈 건가요?”


연기는 꼭 사람처럼 뭉쳤다가 흩어진다. 나는 드람뷔와 스카치 위스키를 꺼내고 잔을 다시 뒤집는다. 시나몬 스틱의 잔향만이 진하게 남는다. 돌아간다, 는 말을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돌아간다는 건 꼭 그곳으로부터 왔다는 것 같다. ‘안’에 단지 들르기만 한 사람을 묘사하는 것 같다. 피터가 보는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니 태연하게 그런 소리를 해댔다고. 어차피 ‘안’의 사람이 아니니까…….

안에서 만난 이방인이 모르는 꼴을 지켜보는 건 즐거웠나 싶다. 모든 걸 알면서, 불을 지폈으면서, 흐린 공기 너머 무엇이라도 잡으려 애쓰는 꼴이 퍽 희극적이었겠다.


“꽤 신뢰할 만한 정보상이 사라졌으니 누군가는 아쉬워하겠어요!”

“내가 아쉬울 일이 생기는 것보다야 낫죠.”


피터의 말은 희미하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에 누군가, 가 포함되는지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뿌연 채 내버려 둔다. 굳이 연기를 헤칠 필요는 없다. 없는데……. 그러나 나는 꼭 연기를 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설령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정말 없다면 내가 그 안을 채울 수도 있었을 테다. 조심스레 재료를 골라 가득하게. 오히려 빈틈이 남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정말 그러길 원했고, 어쩌면 그렇게 했다. 그러나 내가 채워 넣은 것들은 어디로 간 건지 다시 모든 게 엷고 불투명한 공기 속에서 흔들리는데 아지랑이와 연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방황했다…….

그 속에서 확실한 건 숫자뿐이었다. 계량할 수 있는 것들. 1과 ½온스. 딱 지거 하나를 채울 만큼. 마지막은 얼음을 넣은 록으로, 완성된 러스티 네일을 건넨다. 피터는 잔을 보고 잡다한 이야기를 보답처럼 꺼내놓는다. 나는 계속 그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이런 연기 속에서는.


“그렇기야 하네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본질은 정보상도 아니고 바텐더도 아니니까. 아, 제가 본질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안 어울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연기 속으로 손을 뻗었고……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내가 잡았다고 생각했던 건 그저 피터의 손이었다. 피터는 그 손을 보여주면서, 피가 묻은 걸 보라고, 검은 죄악을 보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피터조차도 흐리다. 아니, 이 ‘안’에선 피터의 모습이 가장 흐렸다. 진실. 피터는 또렷하게 말했고 그건 내게 윙윙대는 소리로만 들렸다. 바람 소리에나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잡을 수 있는 실체가 부재했다. 내가 무엇이라도 찾으려 손을 뻗어 휘저을 때 그 손을,

왜 맞잡았는지.

그러니 당신이 제시한 답은, 본질 없는 당신의 진실은.


“그렇죠. 어울리지 않아요.”

“의외네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건.”

“피터 씨는…….”


총구 끝에선 연기가 피어오른다. 올드 패션 글라스 깨지는 소리가 가볍다.


분명한 답을 제시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