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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침묵하는 언어로 인해 인간은 모든 희미하고 불분명한 것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도 더욱 그것들에게 속하기도 한다. 입밖으로 말해진 다음에야 말은 자신의 경계를 그을 수 있다.
내면의 침묵하는 언어는 공포와 어둠 그리고 불확실성과 뒤섞인 상태다. 하지만 침묵하는 언어 안에도 앞서 주어진 구원의 용서가 들어 있다. 침묵하는 언어의 무성적 어둠은 정신을 재촉해서,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환함을 생산하도록 한다.
『인간과 말』, 막스 피카르트
죽기 전엔 주마등이 지나간다던데 딱 그 꼴이었다.
예를 들어 모든 운명이 정해진 채로 우리가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스스로 택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순간 사실 그렇지 않았다고 전부 신의 수작이었다고. 그렇다면 어디에 죄가 있을까.
이미 정해진 일을 행하는 죄인으로 빚어진 그래서 그저 선인이 선을 행하듯 죄를 행하고 죄인이 된 그런 인간들뿐이라면,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나 있나? 죄를 저지르기 위해 태어난 생명에게? 혹은 아무런 의도도 의지도 없이 행하기만 하는 자에게 생각 없이 행동만 있는 자에게 죄가 있다고 할 수 있나(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도 다른 의미에선 죄가 맞으나 잠시 묻어 둔다).
그러므로 이 일의 죄인, 이 모든 살인에 대한 죄인을 정하는 일에 나는 골몰했다. 평생 쥐지 않았던 법률(혹은 성서라도 좋다)을 들고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다. 그자가 죄인이다! 그자를 벌해야 한다! 그러나 올바르지 못한 지목은 분명 다른 죄를 부르므로(그래, 이건 어떤 의미로든 확실한 죄다. 묻어 둘 수 없다) 나는 신중하게,
총구를 내게 겨누었다.
발사로부터 죽음까지 지나가는 모든 길. 명료하게도. 지금껏 죽였던 사람이 죽는 길까지 따라오리라 저주한 적이 없진 않았지만, 예상한 대로 그 얼굴 중 무엇도 나타나진 않았다. 오히려 보인 건 내가 마지막으로 죽인 사람. 그러니까, 죄인이 아닌…… 사람. 죄인이 될 수 없는 사람뿐이다. 그는 지나치게 결백했으므로 내가 말하기 어려웠는데 마치 결백한 채로 두기 위해 죽인 것 같기도 했고 그렇다면 그건 결국 그를 위한 것처럼 그러나 도통 죄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될 수 없어서…….
왜 그가 떠오를까.
내가 직접 칼을 꽂은 사람 그 피로 내 몸을 적신 사람 그 사람 발포의 반동보다도 칼을 직접 살에 박아넣는 느낌은 실제 같았는데 그렇다면 마치 무언가 실제가 아닌 것 같다 말이…… 그렇게 되어서 나는 새로 단어를 골라야 했다. 칼을, 들어, 살해하는, 느낌은, 생생했다.
강렬했다.
인지했다.
무엇이든 그 감각을 설명할 단어도 지금까지의 살인을 설명할 단어도 아니라 내가 말을 고르는 데에 재능이 없다는 것만을 그렇지 말을 잘하는 건 그였지 내가 아니라 그러니 이제 입이 사라져서 손, 만이 남았다. 내가 손을 들어서 그를…….
죄를 사해줄 사람 없다. 그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이를 죽임으로써 나는 최후의 죄를 지었으므로 다른 죄를 모두 고해한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은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옥에 떨어지겠지.
그는 그러지 않을 테고. 그러니 다시 만나자는 게 그저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 그러니까 혹시 그도 결백하지 않고 그 전에 죄를 지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까 지옥에 떨어져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조차 죄라고 한다면야 도저히 답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내가 하거나 하지 않은 일 중에서 죄가 아닌 게 뭐가 있다고? 내 최초의 살인 이후 모든 게 죄는 아니었나? 발걸음 하나 손짓 하나조차.
나는…… 그래도 죄가 기껍다. 죄인됨이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그러리라. 누가 나를 못 박지? 총탄으로? 탄약으로 나를 불태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