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ual and Possible
10000원
그런데 당신은 차이를 말하면서 반드시 특징의 차이만이 아니라 운명의 차이, 정해진 길의 차이도 자주 언급하잖아요. 당신의 길이 왜 나와 달라야 하나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C에게 S이란 사용 설명서가 있는 기계 같은 것이었다. 원래 인간이란 건 복잡해서 스위치를 내리긴커녕 찾기조차 어려운데, C은 S의 모든 스위치와 버튼, 회로와 전선을 알았다. 아이의 손에 떨어진 로봇을 다루듯, C은 무엇이든 누르고 열고 뜯어 보았다. 그렇게 만족한 이후엔 자연스러운 결론이 따라왔다.
C은 이 기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S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S은 멋대로 웃었고 울었다. 마음대로 말했고 움직였다. C에게 가능한 건 간단한 조작뿐이었으므로, S이 손에서 벗어난 광경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 이상을 바란다면 뭐라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C은 빠르게 답을 찾는다.
인간은 가질 수 없으나 기계는 가질 수 있다―인간을 깎아내려 기계로 만든다면, 그건 C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된다. 설계도를 보고 무너뜨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C의 손안에서 S은 다 맞춘 퍼즐이 되었다가 모래성이 되었다가 유리가 되었다. 망가졌고 무너졌고 깨졌다. 마침내 S은…….
◆
거실에 두 명이 앉아 있다. 소파의 한쪽 끝과 다른 끝에. S은 시선을 내린 채다. C이 혼자 떠든다. 그 소리를 S은 듣기만 한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아도 C은 괜찮다. 얼마든지 S의 입을 열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C은 S이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열 가지는 상상할 수 있다. 정말,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S 역시 그걸 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는 건 마지막 반항이리라고 C은 생각한다. S은 (유감스러운 일이나)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한다. 그걸 C은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 S에게도 도망칠 구석이 필요한 탓이다. 지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굳이. 그 작동 원리를 아는데. 눈앞의 버튼을 누르지 않고 너그럽게 군다. S은 C이 허락한 만큼만 물러난다. 구석의 구석까지 멀리 도망쳐도 C의 선을 넘어서진 않는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고, 괜찮은 수준까지만.
약간의 오류, 대부분 수용할 수 있는.
S은 창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C의 반대 방향이다. 그러나 C이 아까 커튼을 쳐두었다. S은 커튼을 걷지 않는다. 커튼 뒤, 창문이 있을 자리만 쳐다본다. 낮의 햇빛이 밝다고 C은 말한다. 눈이 부실 거라고 말한다. S은 긍정도 부정도 없다.
누구도 커튼을 열지 않는다. 거실을 밝히는 건 천장의 조명 하나다.
해가 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