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거울
건물 사이로, 라고 피터가 말했을 때 톰은 거울 사이로? 라고 되묻는다. 아뇨, 건물이요. 거울 말고. 어떻게 그렇게 알아들을 수 있는 거예요? 장난스러운 물음을 들은 뒤에야 그러게, 어쩌다가 거울이었을까. 건물과 거울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는데…… 생각한다.
바는 건물과 건물 사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잿빛 건물, 아주 오래됐거나 새로 지어진 건물들을 지나치다 보면 어디가 입구인지, 즉 어딜 통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되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바로 ‘일반적인’ 손님, 그러니까 이곳으로 오고자 하는 명확한 목적이 없는, 그저 행인이 들어오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피터는 농담을 섞어서, 저도 가끔은 찾기 어려워요,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문이 숨어 버리는 것 같아요, 말하곤 했다.
그래서 톰은 문에 작은 종을 매달아 두었다. 적어도 다른 문, 다른 장소로 통하는 수많은, 이 거리의 잿빛 문과는 구별될 수 있도록. 나직하게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피터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헷갈리지 않았다는 듯이.
그래서, 건물 사이로 들어오면요. 피터가 말을 잇는다. 톰은 그 말을 꼭 거울 사이로 들어온다고 듣는다. 거울 사이로 든다는 건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늘 이런 풍경만 보고 살 것 아니에요. 집에서 바까지, 바에서 집까지. 왔다가, 갔다가, 같은 광경만. 거울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네요. 거울을 마주 보게 놓으면 똑 닮은 상像이 무수히……. 저 말은 또 다른 농담일 것이다. 그러나 피터는 말에 강세를 두어, 갑작스럽게, 그리고 나긋나긋하게 묻는다. 지루하지 않아요? 그런 건.
바의 문이 닫히며 종이 울린다. 일찍 바를 닫고 나오는 길이다. 문을 잠그면서도, 톰은 이게 맞는지 고민한다. 피터는 옆에서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관광 지도를 펼쳐놓고 얘기하고 있다. 여기, 다들 많이 간대요. 여기는 해 질 녘이 예쁘고. 그러다가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어느 지점을 가리키면서, 마지막엔 여기로 갈 거예요, 선언한다. 꼭 톰이 반대라도 하리라 생각하는 사람 같다. 그러나 톰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오늘은 피터와 어울리기로 마음먹었다. 어딜 가든지 간에, 행선지는 전적으로 피터의 몫이다.
꼭 관광이라도 할 것 같이 말을 꺼낸 것과는 다르게, 피터는 톰을 데리고 조용한 카페에나 간다. 중간중간 보이는 가게, 펜이나 종이나 책을 파는, 혹은 옷을 파는 가게엘 들른다. 지도에 표시된 모든 붉고 노란 점, 관광지를 표시하는 점 사이로 그들은 지나간다. 평범한 거리다. 평범한 하루다.
평범함. 톰에게 ‘평범한’ 하루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사전적 의미나 상투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그 사이에서 흔들린다. 평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평범하지 않을지도…… 그때 톰의 시야에 피터가 들어온다. 웃는 얼굴이다. 길가의 솜사탕 가판대를 가리키면서, 피터가 톰을 잡아끈다. 톰은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눈앞의 피터는,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행동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그런 게 더 중요해 보인다.
솜사탕 빨리 먹는 법 알아요? 문득 피터가 묻는다. 톰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다고 답한다. 달잖아요. 오래 먹고 싶어지지 않나요? 피터의 웃음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럼, 솜사탕을 느리게 먹는 법을 대신 찾아봐야겠네요!
솜사탕을 든 두 인영이 유리로 된 건물 외벽에 비친다. 피터는 정말 솜사탕을 빨리 먹었다. 톰이 한두 입 먹고 옆의 건물을 쳐다보는 동안, 정확히는 그곳에 비친 그들을 쳐다보는 동안, 피터는 막대만 잇새로 씹고 있었다. 잠시만요, 피터가 말한다. 금방 돌아올게요! 피터는 막대를 쓰레기통으로 던진다. 꽤 먼 거리였는데도 막대는 정확하게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간다. 톰이 작게 감탄하는 사이, 피터는 골목 사이로 들어간다.
피터가 돌아온 건 톰이 솜사탕 하나를 다 먹었을 때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어깨만 으쓱이곤 답이 없다. 톰은 피터의 옷 소매에 붉은 점이, 툭툭 찍힌 걸 보았으나 피터가 답하지 않았으므로 굳이 캐묻지 않았다. 이제야 다 먹은 거예요? 톰은 고개를 끄덕인다. 피터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어댄다. 불쾌하지 않은 웃음이다. 오히려…….
사소한 잡담을 이어가며 그들은 건물 사이로 들어간다. 거울이네요, 피터가 농담하고 톰은 가볍게 얼굴을 찌푸린다. 잘못 들은 거였어요. 피터가 양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취한다. 재밌어서요. 그냥. 건물이 거울이라는 게.
거울 사이로 두 사람은 나아간다. 그 끝엔 철근이 드러난 아치형의 구조물이 있다. 그 위로는 전구가 여럿 달렸는데, 불이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톰은 그걸 한참 본 뒤에야 그게 커다란 문이라는 걸, 입구라는 걸 깨닫는다. 예전엔 유원지였어요. 지금은 아무도 오지 않지만. 피터가 구조물을 통과하며 설명을 덧붙인다. 원래 입장권을 팔았을 것 같은 작은 안내소는 셔터가 내려가 있다.
작지 않은 규모다. 한쪽엔 공원으로 쓰였을 법한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빈자리가 보인다. 그 근처로는 벤치가 몇 개. 벤치에 언젠가 앉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톰은 그 풀 사이를 가로지른다. 피터는 공원에 들어서지 않고 손을 흔든다. 잠시만 기다려요. 톰이 돌아보면 피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해가 지고, 유원지가 어둠에 잠긴다. 햇빛이 붉게 번지다가 감색 하늘만 남는다. 그 아래, 사람이 찾지 않은 지 한참 지난 건물, 건물들만이 먼지 냄새와 함께 서 있다. 원래는 시끄러웠을 이곳에서……. 불 꺼진 회전목마에 걸터앉아 멍하니 가로등을 쳐다본다. 어느 시점 이후로, 톰의 인생에선 불이 사라졌다. 조명이 꺼졌다. 그는 뒤편으로 건너왔다. 조명이 꺼지고…… 아니, 누군가 조명을 꺼트려서. 그 ‘누구’를 찾기 위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찾으려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에서, 먼지를 닦으면서 컵의 흰 자국을 닦으면서 바 테이블 뒤에서 기다릴 뿐이다. 언젠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종이 울리는 날까지.
거울과 거울 사이에서.
그때, 시야가 환하게 밝아진다. 회전목마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해 톰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을 말의 목을 꽉 잡아야만 했다. 멀뚱히 한 바퀴를 돌자 아까까지 톰이 보던 그 빈자리에 사람이 하나 서 있다. 그곳, 피터가 팔짱을 낀 채 톰에게 말한다. 어때요?
사방이 노란빛으로 빛난다. 눈부시다고 생각하며 톰은 눈을 감는다. 빛 너머에서, 피터가 선 자리에, 그가 서 있다. 레비가 웃으면서 톰에게 말한다……. 빛무리 사이로. 피터가 톰의 인생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처럼 레비가 그랬던 것처럼 웃으면서 거울 사이의 문을 열었고 톰은 문이 그저 열리는 걸 쳐다보고 종이 딸랑거리고…….